검은 피카소로 불리며 낙서를 예술로 승화시킨 힙합의 시각적 선구자이며 1980년대 미국 미술계의 스타로 27년의 짧은 생애로 드라마틱하게 생을 마감한 미국의 흑인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미국, 1960~1988)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장 미셸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출신의 회계사인 아버지와 패션디자이너인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사 남매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들의 예술적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는 바스키아를 후원하였고 1968년 교통사고를 당해 비장절제술을 받았을 때 어머니가 준 그레이 해부학책이 이후 그의 작품세계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해에 부모님이 이혼하고 1974년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하였다가 2년 후 다시 뉴욕으로 돌아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시티애즈스쿨을 다니면서 만난 낙서 화가 알 디아즈(Al Diaz)와 낙서그룹 SAMO(Same Old Shit)를 조직하고 그라피티(graffiti)를 남기기 시작합니다.
1980년 첫 그룹전시회 타임스 스퀘어쇼에서 재능을 인정받고 1982년 21세에 최연소로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ale) 등에 초청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1980년 바스키아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앤디 워홀을 만나게 됩니다. 바스키아의 천재성을 알아본 워홀은 그의 멘토가 되어 같이 작업하고 조언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워홀 덕분에 유명화가가 된 바스키아는 유명세로 힘든 시간을 보내다 1987년 워홀의 사망 이후에 큰 상실감에 빠져 1987년 마약 과다복용으로 27세의 나이에 사망합니다.
작품
극적으로 성공했다 더 극적으로 사라져 버린 바스키아는 그 시대의 상징적 인물이었습니다. 종이, 금속조각, 티셔츠 등에 그림을 그리고 폐금속을 조립하여 조각을 만드는 일도 했던 바스키아는 화포로 사용한 종이와 캔버스에 색연필, 유성 크레용, 파스텔, 수채, 연필, 목탄, 아크릴 등을 총동원하여 그렸습니다. 그림의 주제는 도시 생활의 흔한 이미지인 자동차, 경찰, 빌딩, 놀이, 낙서 등이었습니다. 원시인이나 어린아이의 그림 같은 바스키아의 그림은 인종 문제를 비롯한 당시 뉴욕의 전반적인 사회상을 반영하며 비극과 유머가 공존하는 풍자적인 화풍입니다. 그의 작품 <할리우드 아프리칸>은 거리의 삶을 통하여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각종 운동과 재즈 음악과 영화 등 흑인들이 성공한 분야의 스타들을 언급하며 자본주의의 심장이며 다양한 민족의 용광로인 뉴욕에서 소수민족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맺음말
1세대 그라피티 아티스트인 장 미셸 바스키아의 영향을 받지 않은 현세대 그라피티 라이터들은 거의 없으며, 그는 거리 예술의 틀을 구축했고 낙서에 담긴 특유의 반항의식을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