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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화가

살바도르 달리

by 일조강자 2024. 7. 11.

20세기 예술계의 최고 괴짜였으며 무의식을 탐구한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스페인, 1904~1989)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기억의-지속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생애

살바도르 달리는 1904년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피게레스에서 중산층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이름도 살바도르였고 그가 태어나기 9개월 전에 사망한 형의 이름도 살바도르였다고 합니다. 3살 어린 여동생 안나 마리아는 후에 달리에 대한 책을 쓴 작가입니다. 어려서부터 기행을 일삼고 자신을 천재라고 했던 달리는 14세 때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17세 때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달리는 산 페르난도 왕립 미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당시 이미 뛰어난 실력과 기교를 갖추고 있던 달리는 파행적인 행동을 일삼다가 정학과 감옥생활까지 하다가 1926년 결국 퇴학을 당합니다. 미술학교에서 만난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는 달리가 인정하는 스페인의 시인이었고, 루이스 부뉴엘은 영화감독으로 1929년 영화 <안달루시아의 개>를 공동 제작합니다. 달리는 1945년에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스릴러 영화 <스펠바운스>에 미술감독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전통아카데미 미술학교에 다녔지만 미래주의, 입체주의 등 아방가르드 미술에 심취하였던 달리는, 당시 유럽의 정신세계를 강타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이론에 빠져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몰두하였습니다. 이후 파리로 활동 무대를 옮겨 초현실주의 화가 및 문인들과 어울렸으나 앙드레 브르통과의 불화로 초현실주의 화가 그룹에서 제명당하기도 했습니다. 파리 시절 유부녀이자 10살 연상이었으나 평생의 연인이 될 갈라를 만나 1934년 결혼하였습니다. 갈라는 달리의 광기를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자 모델이며 매니저였습니다. 1982년 달리는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으나 같은 해 갈라가 세상을 떠나고 삶의 의지를 잃은 달리는 1989년 심장마비로 사망합니다.

 

작품

콧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괴이한 외모와 행동, 난해한 작품으로 자신을 세상에 널리 알렸습니다. 사람들이 쉽게 감지하고 받아들이는 이성적 관념이나 이미지를 거부했던 초현실주의 작가들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근거를 둔 인간의 잠재의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달리는 모든 주제를 비논리적으로 변형시켜 꿈의 세계를 묘사하려 했으며, 일상의 의지보다는 꿈이 더 순수한 관념이자 상상력이라 생각했습니다. 꿈은 잠재의식의 일부이고, 잠재의식은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상태라 믿은 달리는 일반 자연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꿈의 공간을 그림 속에 묘사하려 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기억의 지속>을 보면 배경은 그의 고향 카탈루냐의 바닷가와 하늘이고, 탁자처럼 보이는 곳에 나무가 돋아나 있고, 사람인지 새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바닥에 누워있습니다. 달리는 회중시계를 즐겨 그렸는데 여기에도 등장합니다. 하나는 탁자에, 하나는 나무에, 다른 하나는 정체불명의 형체 위에 늘어져 있습니다. 녹아서 흐느적거리는 시계는 일상적 시간 개념이 이곳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빨간 시계의 우글거리는 개미떼는 죽음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달리는 꿈에서 본 까망베르치즈를 연상하고 그린 작품이라 했다는데, 잠재의식이 지배하는 꿈의 세계를 그린 초현실주의 작품을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맺음말

오만한 천재, 괴팍한 광인으로 불리며 삶 자체가 광기와 현기증으로 가득했던 달리의 특수한 화풍은 이전 세대와 구별되는 확고한 스타일이며 달리는 21세기에도 가장 창조적 화가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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