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국 미술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이며 미국 대중의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여류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미국, 1887~1986)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조지아 오키프는 1887년 미국 위스콘신 주 선 프레리 농장을 경영하는 아일랜드계 아버지와 헝가리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부유했던 가정환경 덕분에 한 달에 한 번씩 미술 과외수업을 받았던 오키프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무렵 화가로 진로를 정하고 1904~1905년 시카고 미술학교에서 공부한 후 화가의 길을 걸으려 했으나 남성들이 주도하는 당시 미술계의 현실은 여의치 않았습니다. 오키프는 미술교사가 되기 위해 1907년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2년간 공부하며 상업미술 일을 했습니다. 이후 1912~1916년에 텍사스 등 미국 남부와 서부지역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며 자신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때 서부지역의 광활한 자연환경은 그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당시 시골의 평범한 화가 지망생에 불과하던 오키프는 1916년 사진예술계 거장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를 만나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스티글리츠는 당시 미국 근대사진의 아버지로 불리며 뉴욕에서 '291'화랑을 운영하며 피카소, 세잔 등의 작품을 소개하던 미국미술계의 실력자였습니다. 스티글리츠에 의해 오키프는 단숨에 시골의 미술여교사에서 미국 미술계의 중심으로 떠올랐으나 그에 따른 비난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1924년 오키프와 스티글리츠는 23살의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하고, 두 사람의 관계는 1946년 스티글리츠가 사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스티그리츠 사망 후 뉴욕생활을 청산하고 뉴멕시코의 산타페로 이주하여 광활한 사막의 풍경에 사로잡혀 청교도적인 삶을 살며 고독 속에서 자신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삶이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며, 그녀를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하게 하였습니다. 조지아 오키프는 제럴드 포드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 자유와 예술의 훈장을 받았고 많은 명문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를 받는 등 그녀는 20세기 미국이 사랑한 화가였습니다.
작품
미국을 대표하는 표현주의 작가이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 속에서 생을 마친 화가인 조지아 오키프는 "세상의 광활함과 경이로움을 가장 잘 깨닫게 해주는 것은 바로 자연이다!"라고 했습니다. 오키프는 사막의 말라비틀어진 동물의 뼈나 뿔, 해골 등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고 여기에 꽃과 나무 등 자연의 소재를 확대해 추상성과 구상성을 결합시켰습니다. 탐구적이고 미묘한 율동을 지닌 윤곽선으로 그린 형태 위에 선명한 색채의 엷은 물감으로 강약을 부여했고, 신비스러운 암시를 던져 주는 뼈와 꽃의 형상과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은 서로 대비를 이루며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오키프가 가장 즐겨 그렸던 꽃은 그녀를 빛나게 한 주요 테마였습니다. 그녀는 화면 전체에 확대한 꽃의 형태와 색의 조화로운 구성으로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흔히 볼 수 있던 꽃들을 확대하여 전체 형태가 커지면서 평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던 환상적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생김새나 생물학적 특이성을 이해하는 것이 아닌 색과 형태로서 화면을 점령하는 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키프는 표현의 장엄함을 극대화함으로써 자연의 아름다움과 중요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맺음말
예술사조의 영향을 받지 않고, 세상의 편견을 묵묵히 넘어서며, 추상과 구상이 교차하는 자신만의 추상환상주의적 이미지를 만들어 20세기 가장 독창적인 화가로 평가받는 조지아 오키프는 고독하고도 강인한 예술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