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후반기에 가장 강렬하고 독특한 개성을 보인 화가였으며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와 함께 스페인의 3대 화가로 꼽히는 엘 그레코(El Greco, 스페인, 1541~1614)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1541년 당시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던 그리스의 크레타섬에서 세무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엘 그레코의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풀로스(Domenikos Theotokopulos)입니다. 엘 그레코는 "그리스 사람" 이란 뜻으로 조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그가 예명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크레타섬에서 스무 살까지 비잔틴의 성상화를 그리며 미술 공부를 했으며, 1560년경 베네치아로 가서 티치아노, 틴토레토 등에게 영향을 받아 빛을 중시하고 강렬한 색의 대비를 사용하는 베네치아 르네상스 양식을 습득했습니다. 1570년경부터 로마에 머물며 매너리즘 작품을 그리다가 1577년 스페인에 정착해 명성을 얻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일생 40여 년을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에서 신비한 종교화를 그리며 살았습니다.
화풍
엘 그레코는 르네상스 후반기에 활동했으나 르네상스 전형의, 비례와 원근법, 사실적 색상의 이성적인 그림이 아닌 감성적인 그림을 추구했습니다. 대담한 색과 형상, 사람의 형태를 길게 늘여 왜곡시켜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함으로써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화풍인 표현주의를 엘 그레코는 약 400여 년 전에 시도했던 것입니다. 색채와 구성, 비례로써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세계를 보여주는 엘 그레코의 화풍은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외면당했습니다. "인체의 비례는 자로 재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주관에 맡겨야 한다."라고 말했던 엘 그레코는 인체를 8등신이 아닌 10등신 혹은 11등신으로 묘사했습니다. 당대에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들과 20세기 화가들이 그의 원숙한 후기 작품에서 20세기 표현주의의 뿌리를 발견하고 재평가하면서 그와 그의 작품들은 다시 한번 주목받고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작품
중세적인 모습을 간직한 채 역사적인 신비와 장엄함을 자랑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인 톨레도는 1560년까지 스페인제국의 수도였으며 오늘날까지 당시의 문화적·종교적 유물과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입니다. 엘 그레코는 생의 마지막 40여 년을 이곳에서 보냈기에 사람들은 이 도시를 "엘 그레코의 도시"라고 부릅니다. 그는 두 점의 풍경화를 남겼는데 모두 톨레도를 그린 작품입니다. 그중 <톨레도 풍경, View of Toledo>은 서양 미술사상 가장 드라마틱하고 개성이 강하며 독립적인 초기 풍경화라 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평론가들은 이 그림이 단순히 톨레도의 경치를 그린 것이 아니라 도시의 영적인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화가가 이 도시에서 얻은 영감에 감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하늘색과 황록색의 작은 산과 언덕의 선이 선명하게 대비되고, 당장 폭풍우가 몰아칠 것 같은 하늘을 절묘하게 묘사한 솜씨는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의 하늘과 함께 최고의 기법으로 평가받습니다. 엘 그레코는 톨레도의 정신과 상징적인 모습을 보이려고 도시의 중요 부분만 묘사하고 일부 건물은 제외시켰습니다. 이 작품은 인간의 고난, 영성의 은유, 인생의 신비를 표현하려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맺음말
회색빛 명암과 색채, 길쭉하고 뒤틀린 신체 묘사로 당시에는 매너리즘 미술로 분류되어 평가절하되었던 엘 그레코의 작품들은 19세기 이후 재평가되면서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 등장과 함께 미술사에서 신기원을 이룬 중요한 작가로 인정받으며 독특한 스페인적 미술의 전형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