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어떤 유파에도 속하지 않았으나 20세기 미술가들에게 시대를 앞선 감수성을 지닌 작가로 평가되고 초현실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 프랑스, 1844~1910)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프랑스 북서부 라발(Laval)에서 가난한 배관공의 아들로 태어난 앙리 루소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법률사무소에 다니다가 20세 때 군에 지원하여 군악대에서 클라리넷 연주자로 근무했습니다. 군 복무 5년이 되던 해 부친이 사망하여 제대하고 1868년 어머니와 함께 파리로 이주하여 하급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1871년 파리 세관의 세금징수원이 됐습니다. 이 직업으로 인해 그는 세관원이라는 뜻의 '르 두아니에(Le Douanier)'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세관원 생활을 하며 주말에만 틈틈이 그림을 그려 사람들은 그를 '일요화가'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40세 때인 1884년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에 들어가 그림을 모사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발급받고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했으며, 1885년 작업실을 마련하고 공식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고, 49세가 되는 1893년 전업 화가가 되기 위해 22년간 일했던 세관을 그만둡니다.
"내게 자연 이외의 스승은 없었다"라는 그의 말처럼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 철저하게 독학으로 그림을 그린 루소의 작품들은 신선한 소재와 기발한 상상력으로 이전 어떤 화가와도 닮지 않은 독창적인 영역이었으나 당시 미술계에서는 단조롭고 유치하다고 여겨져 빛을 보지 못하고 폄하되었습니다. 그러다 그의 진가를 알아본 거장 피카소가 루소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데뷔한 다음 해인 1886년부터 거의 매년 독립 미술가전인 앙데팡당을 통해 작품 발표를 했고 이 당시 고갱, 쇠라 등과 친교를 맺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1905년경부터 주목받기 시작했으나 그에 대한 실질적인 평가는 그의 사후에 이루어졌습니다. 그가 남긴 작품의 수는 180여 점으로 활동 기간에 비해 많지는 않습니다.
작품
주변 사람들은 그를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로 보았으나 루소 자신은 뛰어난 화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프랑스 밖으로 여행한 적이 한 번도 없던 루소는 식물원 방문과 식물도감 등 책에서 얻은 이미지만으로 어디에도 없는 정글을 그렸습니다. 이런 독창성은 자신의 그림이 최고라는 확신과 루소의 순수한 기질에서 나온 것입니다. 1890년 낙선전에 출품한 <자화상>에는 그의 미술양식과 화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자부심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그림의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만국기로 장식된 배가 있고, 열기구도 떠 있습니다. 루소는 비행선과 열기구 같은 신기술에 관심을 보이고 이를 그림에 자주 그려 넣었습니다. 1889년 만국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된 에펠탑도 그려 넣었습니다. 맨 왼쪽 상단의 구름 위로는 태양과 태양을 지나가는 구름의 붉은 자국을 그렸는데, 이는 루소만의 독특한 표현방식입니다. 붓과 팔레트를 들고 거대한 기념비처럼 우뚝 선 자신의 모습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처럼 그렸습니다. 팔레트에는 사별한 두 부인의 이름(클레망스와 조세핀)을 적어 넣었습니다. 딛고 있는 두 발 부분을 보면 비율이 잘 맞지 않아 지우고 덧그린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루소는 전통적 아카데미의 원근법과 정확한 채색의 그림을 지향했으나 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맺음말
루소의 그림은 전문적인 기교보다는 소박하고 순수한 열정을 통해 원시적인 세계를 환상에 기반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서투름과 투박함 뒤에서 역설적으로 숭고한 신비로움을 줍니다. 그의 작품은 소박하고 천진난만한 그림의 부활을 자극했고 현대예술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