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양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by 일조강자 2024. 4. 25.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화가이자, '황금의 화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오스트리아, 1862~1918)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키스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생애

구스타프 클림트는 1862년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바움가르텐에서 귀금속 세공사이자 조각가인 아버지와 오페라 가수인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에게서 금속공예의 재능과 어머니에게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은 그는 14세 때인 1876년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회화와 수공예적인 장식 교육을 받았습니다. 1883년 졸업 후에는 남동생 에른스트 클림트(Ernst Klimt)와 친구 프란츠 마치(Franz Matsch)와 함께 공방을 차려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리는 일을 했습니다. 1888년 완성한 <구 부르크 극장의 관객석>으로 황제에게 특별격려상인 황금공로십자훈장을 받고 건축 장식미술 화가로 유명해집니다. 1892년 아버지와 동생 에른스트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2~3년 간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고, 이 시기에 인상파상징주의, 정신분석학 등에 관심을 두었고, 이후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인간의 운명을 암시하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적인 태도의 빈 미술가협회에 반발을 느낀 클림트는 1897년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 요제프 올브리히(Josef Olbrich) 등 19명의 젊은 미술가들과 함께 빈 분리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이 되어 반아카데미즘 운동을 하며 아르누보(Art Nouve:새로운 예술)의 거장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1903년 빈 대학교 대강당의 천장화 <철학>, <의학>, <법학>이 외설성으로 교수들과 정면충돌하는 사태를 겪고 공공작품을 의뢰받지 않았으며, 그의 작품은 더 기하학적이고 지적인 추상양식으로 변해갔습니다. 1905년 빈 분리파를 탈퇴하고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에 몰두하여 <키스>, <다나에> 등 이른바 '황금시기'의 대작들을 완성하였고, 1918년 뇌출혈로 쓰러져 합병증으로 56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은 관능적인 여성 이미지와 찬란한 황금빛과 화려한 색채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는 총체적인 예술을 지향했으며 성과 사랑, 죽음에 대한 알레고리(Allegory:우화, 풍자)로 많은 사람을 매혹시켰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나왔던 모티브들은 다양한 상품이 되어 카드, 열쇠고리, 도자기 등으로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다가옵니다. 모자이크 기법과 장식적인 패턴, 금박을 사용한 화려한 색채표현으로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킨 클림트의 황금 스타일은 <키스>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포옹하는 연인을 묘사하고 있는 <키스>는 전반에 흐르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아름다운 묘사로 대중의 엄청난 인기를 얻었고 이로써 클림트는 장식미술가에서 현대 미술의 거장으로 추앙받게 되었습니다.

 

맺음말

당시에는 외설성과 선정성으로 논쟁의 대상이었던 작품들이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품들이라는 사실을 알면 클림트 자신도 놀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밸런타인데이 카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그림이 클림트의 <키스>라고 합니다. 자신의 특유한 스타일을 고집하며 남다른 에로티시즘의 미학을 표출하려 한 금빛 화가 클림트의 작품들은 우리 주변에 친숙하게 다가와 있습니다.

 

'서양 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앙리 마티스  (0) 2024.05.08
파블로 피카소  (0) 2024.04.26
에드바르트 뭉크  (0) 2024.04.18
폴 고갱  (0) 2024.04.17
빈센트 반 고흐  (0) 2024.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