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미술가 중 하나이며 입체주의의 창시자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스페인, 1881~1973)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름
그의 풀네임은 '파블로 디에고 호세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후안 네포무세노 마리아 데 로스 레메디오스 시프리아노 데 라 산티시마 트리니다드 루이스 이 파카소(Pablo Diego Jose Francisco de Paula Juan Nepomuceno Maria de los Remedios Cipriano de la Santisima Trinidad Ruiz y Picasso)'입니다. 스페인 문화의 특징으로 조상의 성을 이름에 붙이다 보니 이름이 길어지게 되었습니다. 부모의 성만으로 즐이면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이고, 파블로는 어머니의 성씨인데 그가 어머니의 성씨를 좋아하여 파블로 피카소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생애
피카소는 1881년 스페인의 항구 도시인 말라가에서 미술 교사인 아버지 호세 루이스 블라스코와 어머니 마리아 피카소 로페스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그림을 배우던 피카소는 천재적인 소질로 주변을 놀라게 했습니다. 남들이 몇 달 걸릴 과제를 며칠 만에 완성하기도 하고, 10세 즈음에 완벽한 소묘 실력을 보였고, 12세 때 라파엘로만큼 그렸다고 할 만큼 천재성을 발휘했습니다. 아들의 비범한 재능을 보고 아버지는 전통적인 화가로 성공하기를 바랐으나 피카소는 전통적인 학습법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카페나 사창가 등을 배회하며 그곳의 생활을 그렸고, 프라도 미술관에 자주 가서 벨라스케스, 엘그레코, 고야 등 옛 스페인 거장들의 그림들을 감상하고 모사하며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15세 때 그린 사실주의 작품 <첫 영성체>로 이미 옛 거장들의 구도와 색채, 기법을 완전히 습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피카소는 1904년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여 아방가르드(Avant-Garde:전위예술) 예술가들의 모임에 핵심적인 인물이 되었고 사망 시까지 프랑스에서 살았습니다. 삶을 예술로 채웠던 천재이자 혁명적 예술가인 파블로 피카소는 92년의 세월 중 거의 80년간 자신이 원했던 모든 예술분야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림과 조각, 도자기, 시, 무대장치 등 표현의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독창적 예술을 창조해 나갔습니다. 피카소는 20세기의 전설이 되었고 부와 명예를 동시에 거머쥔 성공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평생 2명의 정식 부인과 5명의 사실혼 관계의 여인들 사이에서 4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1973년 4월 8일 부인 재클린 로크(Jacqueline Roque)와 친구들에 둘러싸인 채 임종했습니다.
작품
그의 작품들은 특징과 시기에 따라, 청색을 주로 사용했고 우울한 분위기를 발산하는 청색 시대(1901~1904), 핑크색과 오렌지색이 두드러지는 장미 시대(1905~1907), 고대 이베리아 조각과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받은 원시 시대(1908~1909), 3차원의 형태를 2차원의 평면에 묘사하는 분석적 입체주의 시대(1908~1912), 콜라주 기법을 사용한 종합적 입체주의 시대(1912~1913)로 나뉩니다.
입체주의라는 새로운 사조의 시작을 알린 혁명적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은 1907년 발표 당시 대부분의 비평가와 동료작가들로부터 악평이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후에 입체주의를 함께 발전시킬 조르주 브라크도 "자네는 우리가 톱밥을 먹고 석유를 마시기를 원하는가?"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5명의 여인들이 야릇하면서도 멍한 표정과 자세로 관람자들을 응시하고 있고, 야만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여인들의 몸은 기하학적으로 묘사되었고 원근법도 무시되었습니다. 후일 미술사가들은 <아비뇽의 처녀들>을 모든 현대미술의 시작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맺음말
피카소는 약 1만 3천 점의 유화와 소묘, 10 점의 판화, 300점의 조각과 도기를 제작하여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1985년 개관한 프랑스 국립 피카소미술관에 그의 작품 약 3500점 이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는 한 작가의 미술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