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적이고 고독한 생을 보낸 화가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고, 사후 가장 영예를 누린 화가이며,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분류되지만 야수파, 표현주의 등 이후의 사조들에 많은 영향을 미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네덜란드, 1853~1890)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고흐는 1853년 3월 30일, 네덜란드 남부 노르트브라반트주 쥔더르트(Zundert)에서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인 아버지와 서적상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6남매 중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 지 4년 후 평생의 동반자이자 후원자가 될 남동생 테오(Theo)가 태어납니다. 고흐는 진지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였고 어려서는 미술보다 곤충에 관심이 많았고 상당한 독서광이었습니다. 미술의 재능은 취미로 미술을 하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11세 때인 1864년 제벤베르헌(Zevenbergen)의 개신교 교사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가 프랑스어와 영어, 독일어 등을 배웠고 1866년에 탈뷔르흐(Tilburg)에 있는 빌럼 2세 국립중학교에 진학하여 미술수업도 받았으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868년 집으로 돌아옵니다.
1869년 화상을 하던 큰아버지의 소개로 화랑에서 화상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고 이때 바르비종파인 밀레의 작품에 큰 감명을 받고 밀레를 사부라 부를 정도로 존경했고 영향을 받습니다. 1876년 화랑에서 해고된 뒤에는 종교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무급교사와 보조목사, 선교사 등의 일을 하지만 이 또한 적응하지 못했고, 1880년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해 남동생 테오의 권유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886년 파리로 와서 페르낭 코르몽의 화실에서 두 달간 공부했고, 이 시기에 베르나르, 앙트랭, 로트렉 등과 친분을 쌓고, 1887년 11월 폴 고갱과 만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1888년 파리에서 프랑스 남부의 아를(Arles) 지방으로 옮겨간 고흐는 그곳에서 200점이 넘는 작품을 그립니다. 같은 해 10월 고갱과 함께 몇 주간 작업했으나 관계가 악화되어 고갱은 떠나고 고흐는 1889년 생레미의 정신병원으로 입원합니다. 이 시기에 그의 후기 걸작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퇴원 후 작고 조용한 시골마을인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지내던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자신의 가슴에 총을 쏜 고흐는 이틀 후 동생 테오의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작품
빈센트 반 고흐는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자신이 존경하던 화가들의 그림을 모사하면서 기교를 익혀나감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들었습니다. 렘브란트나 프란스 할스 같은 거장들에게서 거친 붓 스타일과 음영이 뚜렷한 기법을 배웠고, 밀레에게서 그림의 중요한 소재인 자연과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는 것에 영향을 받고, 쇠라의 점묘법의 영향으로 붓터치가 점 모양을 띄게 되었고, 들라크루아에게서는 대담한 색채의 사용이라는 영향을 받았습니다. 일본의 우키요에(에도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유행한 판화)의 영향으로 그림자의 생략, 옅은 채색, 작은 크기의 인물 등의 특징을 보이기도 합니다. 대담한 색상의 사용, 즉흥적인 붓터치, 두껍게 덧칠하는 기법 등은 고흐만의 독창적인 기법이라 할 수 있으며, 그만의 감성적인 접근방법이었습니다.
해바라기 하면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릴 만큼 해바라기는 그가 가장 많이 그린 주제였습니다. 자신이 느끼는 기쁨, 생생한 삶의 영감이 해바라기와 닮았다고 생각했던 고흐에게 해바라기는 생명의 꽃이었습니다. 주로 꽃병에 12~16개의 해바라기가 꽂힌 방식으로 그렸는데, 해바라기를 그린 정물화만 12~13점에 이릅니다. 거칠고 짧은 붓질로 그린 해바라기에는 반 고흐의 에너지가 넘치고 있습니다. 대담한 노란색이 배경과 화병 꽃잎, 꽃술에 이르기까지 화폭전체를 장악하고 있고, 씨가 있는 부분은 오렌지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시든 꽃잎은 좀 더 어두운 톤으로 처리했습니다. 그는 평소 18가지의 노란색 계통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물화는 조금씩 다른 노란색들로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꽃은 화면에서 대칭 구도를 이루며 안정적 구성을 보이고, 배경은 옅은 버터색과 황토색의 노란 물감으로 분할되어 있으며 가는 푸른 선이 테이블의 경계를 나누고 있습니다. 또한 푸른 톤과 노란색으로 채색한 꽃병. 이런 독특한 색의 조화가 반 고흐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맺음말
자연을 그리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온갖 감정을 표현했던 화가. 인상주의를 받아들이고도 끊임없이 인간의 감정을 끌어내는 표현주의를 시도했던 화가. 그래서 후대 화가들은 빈센트 반 고흐를 표현주의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