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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by 일조강자 2024. 1. 4.

 

하늘에서 신이 내려보내셨다고 칭송을 받은 전성기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의 화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탈리아, 1452~1519)의 생애와 업적, 주요 작품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모나리자-이미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생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그의 이름에도 쓰인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 마을 빈치(Vinci)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증인이었던 아버지와 시골 농부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신분의 차이로 결혼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다 빈치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당시에 사생아는 무척 낮은 신분이어서 정상적인 교육을 받거나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직업 선택의 폭이 넓지 않았던 다 빈치는 열네 살 때, 그 당시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실력 있는 예술가였던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 수습생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20대 초반까지 화가 수업을 받았으며, 자신을 능가하는 다 빈치의 재능을 알아본 베로키오가 이후 그림을 그리지 않고 조각에만 몰두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1472년부터 본격적인 화가로서 활동을 하였으나 그림을 완성하는 경우가 적어 그가 남긴 완성작의 수는 스무 점을 넘지 않습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미술사에 길이 남을 걸작들과 다양한 분야에 엄청난 분량의 메모와 연구 노트 등을 남겼던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허비했다"라는 한탄을 남기고, 1519년 프랑스에서 사망했습니다.

 

그 밖의 활동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파동 운동 이론, 연통관 내의 압력, 유체에 미치는 압력의 발견자이며 양수기와 수압의 발견자였습니다. 나는 방법의 연구로 비행기의 원리를 생각하고 바람의 발생과 구름과 비의 발생도 이론적으로 연구했으며, 식물학 등에 관한 연구도 하였고 해부학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였습니다.

 

화가, 발명가, 과학자, 문학가, 식물학자, 해부학자 등 여러 방면에서 보인 그의 천재성을 역사가인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는 저서 <미술가 열전>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우리는 이따금씩 자연이 하늘의 기운을 퍼붓듯, 한 사람에게 엄청난 재능을 내려주는 것을 본다. 이런 감당 못할 초자연적인 은총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 예술적 재능을 고루 갖게 되는 일이 없지 않다. 그런 사람은 하는 일조차 신성해서 뭇사람들은 감히 고개를 들 수 없으니 오직 홀로 밝게 드러난다. 또 그가 지어내는 것들은 신의 손으로 지어내는 것과 같아서 도저히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주요 작품

성서의 이야기를 가장 극적인 현실로 바꾸어 놓은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대표 작품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은 역사상 최고의 종교회화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는 말씀에 경악하는 열두 제자의 다양한 모습을 3명씩 4개 그룹으로 묶어서 배치하였고, 중앙에 앉아 있는 그리스도 뒤편에 정확한 원근법에 삼각구도로 3개의 창문을 배치하였습니다. 3개의 창문과 4개의 그룹은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와 4개의 복음서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가능하게 합니다. 이 작품에서 다 빈치는 당시에는 일반적이던 프레스코(fresco) 화가 아닌 템페라(tempera, 계란 노른자와 식초와 물감의 혼합)화를 시도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색의 표현과 등장인물의 세밀한 표정 묘사가 가능했으나, 습기에 약한 템페라화의 단점으로 그림이 손상되어, 무려 11차례의 복원 작업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원형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는 전형적인 삼각구도로 그려진 미술사상 최고의 찬사를 받고 있는 초상화입니다. 다 빈치도 이 작품에 대한 애착이 커서 자신이 사망하던 때까지 이 그림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 빈치는 자신이 창안한 스푸마토(sfumato, 윤곽선을 흐릿하게 그리는 기법) 기법을 사용해서 작품에 신비한 생명감을 현실화했습니다. 윤곽선이 없기 때문에 마치 살아 있는 인물처럼 볼 때마다 표정이 달라지는 듯 느껴지고 일정 거리로 물러서야만 신비한 미소가 드러납니다. 배경에 보이는 풍경은 상상적인 것으로 이 역시 다 빈치가 최초로 시도한 것으로 '공상적인 원근법'이라 부릅니다. 이 작품은 명성만큼이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게 됩니다. 1911년에 도난당했다가 2년 후에 되찾았고, 3차례의 테러를 당한 끝에 현재는 방탄유리가 작품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베르사유궁, 나폴레옹 1세의 침실, 앙부아즈 성, 앵그르 미술관 등 수많은 장소를 떠돌았던 <모나리자>는 현재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연간 600만 명의 관람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맺음말

신이 내린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형 인간 즉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역사상 가장 생각이 자유롭고 여러 가지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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