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로 불리고 플랑드르화파의 창시자이며, 유화 기법을 사용한 최초의 미술가인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네덜란드/벨기에, 1390?~1441)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생애, 업적
얀 반 에이크는 플랑드르(프랑크 왕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오늘날 프랑스의 노르 주, 벨기에의 동플랑드르·서플랑드르 주, 네덜란드의 젤란트 주)의 화가입니다. 그의 출생과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1422년부터 네덜란드의 백작인 바이에른 요한의 명예 시종 겸 화가로 일했으며 1425년 백작의 사망 후에는 플랑드르의 통치자이자 그의 예술후원자인 부르고뉴의 선량공 필리프 3세의 궁정화가가 되어 사망할 때까지 그의 밑에서 일하며 많은 외교적 비밀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반 에이크는 완전히 혁신적인 화가였으며 고딕 미술의 전통과 전혀 다른 새로운 플랑드르화의 고안자였습니다. 그는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의 유화를 그렸고, 사실주의 기법으로 세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사실 그가 유화를 직접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혁신적인 기법을 통해 유화를 완벽하게 개선했습니다.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유화의 창시자'라 일컬으며 칭송했습니다. 당시 화가들은 안료에 물과 달걀노른자 혹은 유기 고무를 섞어 만든 템페라(tempera)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 방법은 습기에 약하고 그림이 갈라지는 단점이 있어 세밀한 효과를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반 에이크는 여러 차례의 실험 끝에 아마의 씨에서 추출한 린시드 오일에 분말로 된 안료를 섞어 만든 물감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는 자신의 유화 작품에서 풍부하고 선명한 색채, 빛과 톤의 미세한 농담, 꼼꼼한 세부묘사 등의 기법을 구사할 수 있었습니다.
주요 작품
얀 반 에이크의 작품 중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르놀피니의 결혼>입니다. 사실적 묘사에 뛰어났던 그의 예술적 감각은 매력적인 두 인물이 그려진 이 작품에서 완벽하게 드러납니다. 작품에서 묘사된 부부는 토스카나의 부유한 상인 조반니 아르놀피니와 그의 아내 조반나 체나미입니다. 수십 년 동안 비평가들은 이 그림이 실제 결혼식을 묘사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해 왔으나, 대부분은 이 그림이 부부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의뢰되었다는 데 의견을 함께합니다. 이 그림에는 축하하는 분위기는 없지만 그림 속 부부는 결혼 서약의 중요성을 인식한 듯 매우 진지한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뒷벽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여주는 열 개의 장식으로 빙 둘러진 볼록 거울이 걸려 있습니다. 거울 속에 방안에 들어와 있는 두 사람의 형상이 비치고 이 중 청색 옷을 입은 이가 화가 자신인 반 에이크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관찰자인 화가 자신의 모습이 그림 속에 함께 그려지는 형식은 후에 벨라스케스와 같은 화가들에게 차용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벽면에 걸려 있는 묵주, 부부간의 신의와 정절을 상징하는 조그마한 개 한 마리, 샹들리에 위의 양초 하나 등 여러 가지 상징들로 반 에이크는 단순히 결혼식 이상의 의미를 작품에 담아내려 하였습니다.
맺음말
플랑드르 화파의 창시자이며 유화 기법에 혁명을 일으켰던 얀 반 에이크, 대상의 표면질감을 포착하는 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대상에 대한 상세한 묘사를 구사해 놀라울 정도로 사실적인 화면을 그려냈습니다. 그의 완벽하고 정밀한 작품들은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