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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by 일조강자 2024. 1. 10.

북유럽과 이탈리아 스타일을 조화시킨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화가이자 '독일 미술의 아버지', '북유럽의 레오나르도'로 추앙받는 인물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독일, 1471~1528)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장갑을-낀-자화상
알브레히트 뒤러, 장갑을 낀 자화상

 

생애

뒤러는 독일의 뉘른베르크에서 헝가리에서 이주한 금세공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당시 뉘른베르크는 북유럽과 남유럽을 잇는 중요한 교역도시였으며 활판인쇄, 목판화 등에서 가장 선구적인 기술을 자랑하던 도시였습니다. 뒤러는 금세공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소묘와 목판화 등을 배우고 화가가 되기 위해 미하엘 볼게무트(Michael Wolgemut)의 문하생이 되었습니다. 수년간의 화가로서의 수련기를 마친 뒤, 당시의 관례대로 주변 지역을 여행하면서 이탈리아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보게 된 뒤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1494년 정혼자인 아그네스 프라이(Agnes Frey)와 결혼했는데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들에게 매료된 그는 1494년과 1505년 두 번의 이탈리아 여행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은 뒤러의 스타일에 엄청난 충격과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보다 기념비적이고 견고해져 갔으며, 균형비율과 수학적인 원근법에 대한 이해를 정교하게 발전시켰고, 색채는 더욱 밝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뒤러는 이탈리아의 화가들이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귀족과 동등한 예술가'라는 개념을 최초로 북유럽에 퍼트려 화가의 사회적 신분을 높였습니다.

 

 

당시의 화가들은 교황이나 왕, 귀족 같은 권력이 있고 부유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으나 뒤러는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13세 때 드로잉으로 그때까지의 화가가 그린 '최연소 자화상'을 그렸고, '서양 미술사 최초의 독립 자화상', '미술사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던 그는 그만큼 자긍심이 강했던 화가였습니다.

 

회화는 비용이 많이 들어 주문을 받아야 제작이 가능했고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으나 목판화는 제작 비용이 적게 들고 작가가 자유로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에, 뒤러는 판화에서 자신만의 독자적 창조성을 인정받아 세계적 명성을 얻었습니다. 1498년에 요한계시록의 장면을 제작 출판했던 15개의 목판화는 뒤러만의 풍부한 상상력으로 탄생한 삽화가 실려있으며 목판화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밀합니다. 지금까지도 뒤러의 소묘, 목판화와 동판화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1512년 뒤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궁정화가가 되어 그의 후원을 받게 됩니다. 이후 비례학과 이론적 작업에 몰두했으며, 1518년 뉘른베르크 시의 대표로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렸던 제국회의에 참석했고, 1520년 네덜란드 도시들을 여행 중 말라리아로 추정되는 열병에 걸려 고생하다가 57세에 사망했습니다.

 

작품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던 뒤러는 엄숙하고 진지한 표정과 자세로 자신을 묘사했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이 강했던 뒤러는 사명감이 가득한 구도자의 모습처럼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그가 남긴 많은 자화상 중 가장 뛰어난 작품인 <장갑을 낀 자화상>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오만하고 도도한 느낌의 표정에서 '예술가의 창조력은 신의 창조력에서 유래한다'는 그의 신념이 느껴집니다. 이 작품 <장갑을 낀 자화상>에 동원된 구도와 기법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르네상스 형식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삼각구도의 화면, 자신의 양팔은 창틀 위에 편안히 올려놓고 수평으로 처리해서 관람자가 인물을 가깝게 느끼도록 처리한 것, 창밖의 배경을 자세히 그려 넣은 것 등이 뒤러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구불거리며 반짝이는 머리카락과 눈의 세밀한 묘사는 가위 독보적입니다. 관람자들은 이 작품의 놀라운 사실성과 뛰어난 테크닉에 큰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맺음말

'예술은 확실히 자연 안에 있다. 그것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예술을 소유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알브레히트 뒤러는 장인이기보다는 지식인이기를 원했던 최초의 미술가로 북유럽의 르네상스를 이끈 선구자였습니다. 그의 등장으로 북유럽 미술은 고딕 미술과 완전히 결별하고 르네상스에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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